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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문법 _ 어형론/문법 용어 설명(고전 라틴어)

고전 라틴어에는 중동태 또는 중간태가 없었다

by 임메르시오 2021. 8. 15.

 

고전 라틴어의 중동태 또는 중간태에 대하여

 

1) 고전 라틴어에는 중동태가 없었다.


고전 라틴어에는능동태와 수동태만 있었다. 중동태 또는 중간태는 없었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어에는 중동태가 있었다.


라틴어의 중동태는 중세 라틴어(Medieval Latin)에서 그리스어 성경의 중동태 문장을 라틴어로 표현하기 위하여, 수동태 형식의 동사를 능동의 의미로 사용하는 중동태 용법을 도입한 것이다(출처 : Wikipedia, Medieval Latin). 엄밀하게 말하면, 탈형동사(디포넌트 동사) 형태로 그 잔재가 남아있던 원시 라틴어의 중동태 용법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탈형동사는 기본형이 수동태이면서 뜻은 능동이므로 동사의 중동태 용법과 유사하다. 서로 다른 점은 탈형동사는 중동태 동사와 달리 능동형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는 동사의 중동태나 탈형동사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리스어 신약성경에 나온 중동태 형태의 동사 중에서 대략 75%가 탈형동사(deponent)이다. 나머지 25%는 능동태와 수동태의 용법이 별도로 있음에도 여전히 중동태도 쓰이는 동사들이다.

 

2) 중동태(또는 중간태)의 의미


동사의 활용에서 중동태를 사용하는 인도유럽어족의 대표적인 언어는 고대 그리스어(Ancient Greek)와 산스크리트어(Sanskrit)이다. 


중동태의 주어는 동사가 묘사하는 행위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이에 비해 능동태는 주어가 동사의 행위 바깥에 존재한다. 

만약 '그가 말에서 줄을 푼다'라는 문장이 중동태로 표현되어 있다면, 그 자신이 '말을 탈 것'이라는 점이 함의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을 줄에서 푸는 과정에 주어가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이 문장을 능동태로 표현하면, 말을 줄에서 푸는 과정이 주어의 밖에서 이루지며, 풀려난 말을 주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타는 상황도 포함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능동태 표현에서는 주어가 그 말을 탈지 안탈지에 대한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중동태로 '욕구하다'를 표현하였다면, 주어가 그 욕망이 추동되는 과정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 그리스어(헬라어)에서 수동태인지 중동태인지를 결정할 때는 중동태라는 동사의 어형보다는 동사의 개념이나 문맥을 살펴야 할 때가 있다. 즉, 주어가 동사의 동작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판단해 보는 것이다. 주어의 특별한 관심이나 재귀적 의미 또는 자기를 위한 동작 등이 중동태에 해당한다. 특히 고전 그리스어 현재시제와 미완료과거시제, 완료시제 등에서는 중동태와 수동태의 동사 형태가 동일하므로, 그것이 중동태인지 아니면 수동태인지는 문맥을 통해 파악하여야 한다. 



3) 언어의 발전과 중동태 또는 중간태


인류 언어는 명사로부터 시작되었고 여기에서 동사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눈, 비, 바람 등의 명사가 먼저 생기고, 눈이 온다, 비가 온다 등의 동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처음 동사가 만들어질 때는 개별 행위자(즉, 주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It rains(비가 온다)와 같이 비인칭 표현이 먼저 생겼고 그 다음에야 행위자 중심의 1인칭과 2인칭의 주어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주어와 동사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중동태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중동태의 어형이 뚜렷이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어와 그 조상어인 원시 인도-유럽어의 어미를 비교해 보아도 추정이 가능하다.

처음에 중동태는 자동사(능동태), 재귀동사, 수동태 등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였다고 한다. 점차 행위자 중심의 능동태 표현이 발전하면서 중동태-능동태의 대립쌍이 언어 생활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 다음에 능동태와 대비되는 행위 즉, 행위를 당하는 이를 나타내는 수동태가 중동태에서 분리되었다. 언어생활에서 능동태-수동태의 관계가 정착되면서 중동태는 점차 사라졌는데 이 시점이 대략 고전 라틴어 형성기인 기원전 1세기 전후라고 한다. 그래서 라틴어에는 중동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동사의 표현형태인 태(voice)는 중동태로부터 시작되었고, 나중에 행위를 주도하는 능동태와 행위를 당하는 수동태로 분화되었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능동태와 수동태 뿐만 아니라 중동태도 존재하지만, 영어 등 현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에는 중동태가 없다. 다만, 라틴어의 탈형 동사는 능동태와 수동태로 분화되지 못한 중동태의 흔적으로 보이며, 다른 언어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 이 부분은 중동태의 세계(저자 고쿠분 고이치로,  출판사 동아시아, 2019) 북리뷰를 참고하여 정리함



4) 원시 인도유럽어들의 어미 비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몇몇 언어들의 동사 기본어미를 비교해보면 아래와 같다.


인도유럽어들의 동사 기본어미 비교(원시 능동태 1차 어미) 

이 표에 있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어미는 대표적인 능동태 어미이다. 그런데 원시 인도유럽어(인도유럽어족의 조상어)의 어미를 보면 그리스어 중동태 또는 중수동태 어미와 거의 같다. 산스크리트어는 알지 못하므로 논외로 한다.

고대 그리스어의 중동태(또는 중수동태) 어미를 비교가 편하도록 라틴어로 문자변환을 한 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μαι, -σαι, -ται, -μεθα, -σθε, -νται (그리스어 중동태 어미) 
-mai, -sai, -tai, -metha, -sthe, -ntai(그리스어 중동태 어미의 라틴어 변환)
-mai, -soi, -toi, -medha, -dhwe, -ntoi (원시 인도유럽어 어미)

(성염 교수의 고급라틴어 28쪽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함)


원시 인도유럽어족의 동사의 기본어미가 그리스어 중수동태 어미와 거의 똑같은 것으로 보아 동사는 중동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스어의 예를 보면 능동태의 어미도 중동태 어미를 간략화하는 형태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상한 기본형 취급을 받고 있는 탈형동사(디포넌트 동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동사의 기본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법 연구는 언어가 충분히 발전한 뒤에 시작되었으므로 언어 생활의 중심에 있었던 능동태와 수동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점차 퇴화되어 갔던 탈형동사는 괴이한 형태로 보였을 것이다.



☞ 인도유럽어의 동사는 태의 측면에서는 중동태로부터 시작되었고, 시제의 측면에서는 현재시제(미래 포함)와 과거시제 등 2가지로 시작된 듯하다. 언어학에서는 직설법에는 원래 현재와 과거시제만 있었는데, 접속법의 일부가 직설법 미래시제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현재와 미래를 나타내는 시제를 1차시제(primary, 기본시제)라고 부르고, 과거를 나타내는 시제를 2차시제(secondary, 부차시제)라고 부른다. 그리스어의 동사 어미는 여전히 1차 시제와 2차 시제로 뚜렷히 대별된다.



5)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동사 어미 간략화 현상


위 표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미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주고 있다. 바로 단수 기본형 인칭어미의 간략화 현상이다. 


ⓐ -mai, -soi, -toi (원시 인도유럽어, 1, 2, 3인칭 순. 이하 동)
ⓑ -mi, -si, -ti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
ⓒ -m(-o), -s, -t (라틴어)


(1) 동사의 기본형이 중동태에서 능동태로 바뀌면서(ⓐ → ⓑ) 어미의 모음이 간략화되고 있다. mai → mi와 같이 주로 i 앞의 모음이 생략되고 있다. 

(2) 산스크리트와 그리스어보다 나중에 발달한 라틴어의 어미를 보면 남아있던 모음 i마저 탈락하고 있다(mi → m).  

(3) 더 나아가 그리스어와 라틴어 모두에서 1인칭 단수는 mi 나 m 자체가 생략되고 연결모음 o가 인칭어미를 대신하고 있다. 생략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모두 1인칭 어미는 장모음 o이다.   

ⓐ 고대 그리스어 1인칭 어미 : -ω (ō) 
ⓑ 라틴어 1인칭 어미 : -ō

(4) 그리스어 -mi, -si, -ti는 나중에 -mi, -s, si와 ō, -eis, -ei(연결모음 +  ─, s, i)로 변하게 된다. 
어미를 그리스어로 표현하면 μι-, -σι, -τι(미, 시, 띠)가 μι, ς, σι(미, 스, 시)와  ω, εις, ει(오-, 에이스, 에이)로 변했다. 이 중에서 μ(m)가 생략된 ω, εις, ει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 예를 들면 3인칭 단수 어미 ti가 ei로 변하는 과정은 e(연결모음)+ti가 esi로 변한 다음 모음 사이 s가 생략되고 ei만 남은 것이다. 


(5) 라틴어의 기본어미도 -m, -s, -t 보다는 그리스어와 같이 m이 생략된 -o, -s, -t가 더 일반적이다. 



6) 태의 교착과 탈형동사 그리고 중동태의 흔적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중동태의 예라고 주장하는 문장은 아래와 같다. 


Cashmere jumpers don't wash well in a washing machine(캐쉬미르 점퍼가 세탁기에서 잘 세탁이 안된다). 이 문장에서 wash는 능동의 표현이지만 주어인 캐쉬미르 점퍼가 뭔가를 세탁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중동태의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태의 교착현상이지 중동태의 예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등에서 말하는 중동태는 수동태 형식으로 능동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태의 교착현상은 라틴어 등에도 있으며, 라틴어 문법에서는 이를 중동태라고 하지 않는다. 라틴어에서 수동의 의미로 사용된 능동형 동사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fio(되다), pereo(망하다), veneo(팔리다), vapulo(매 맞다). 


실제로 영어에서 보이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식의 중동태 표현은 다음과 같다. 

She was frightened at the sight of a big cockroach.
(번역) 그녀는 큰 바퀴벌레를 보고 놀랐다. 

이 문장에서 능동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주어가 그 대상을 at 다음에 표현하고 있다. by를 이용하여 행위자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frighten은 ‘놀라게 하다’라는 타동사인데 그 수동형인 was frightened로 능동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자기 갈 길을 갔을 뿐 그녀를 놀라게 할 능동적 의도가 없었으며, 그녀가 그것을 보고 '능동적으로' 놀란 것이다.

미분화된 것이라도 존중해야 하고 그 고유의 가치를 인정해야겠지만, 중동태에 대한 찬사와 지향은 퇴행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다. 현재의 중동태의 쓰임을 보면(고대 그리스어), 주어의 감정이나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가장 능동적인 행위를 표현할 때 동사의 중동태를 사용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중간태'가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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