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활용과 우회어형 또는 용장활용과 용장표현
1) 개요
용장활용 또는 용장어형이라는 말보다는 우회활용(periphrastic conjugation, 우회접용) 또는 우회어형(periphrastic form)이 더 적절하다. 용장은 ‘중언부언’을 의미이므로 적합하지도 않다.
동사의 우회활용(우회접용)은 영어의 현재완료 have written과 같이 2개의 동사를 결합하여 새로운 시제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다만, 라틴어에서는 laudandus est(칭찬받아야 한다)와 같이 미래분사 + sum동사 어구에 한정하여 좁은 의미로 '우회활용'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라틴어나 그리스어의 영어문법서에서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용례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회어형(periphrastic form)
우회활용(periphrastic conjugation)
우회시제(periphrastic tense)
우회문장(periphrastic construction)
우회어구(periphrasis, 라틴어 periphrastica)
완료시제 명령법 우회어형(periphrastic perfect imperatives, '우회 완료시제 명령법')
접속법 우회어형(periphrastic subjunctive, '우회 접속법')
희구법 우회어형(periphrastic optative, '우회 희구법')
우회표현(periphrastic expressions)
2) 우회활용 또는 용장활용이라는 용어의 뜻
우회어구를 뜻하는 영어 periphrasis는 라틴어 periphrastica(뻬리프라스띠까)에서 온 것다. 어원적으로 보면, peri는 '둘레'이고 phrase는 '어구' 이므로, 우리말로는 '돌려말하기, 우회적 표현(roundabout way of speaking)' 정도가 적절한 뜻이다.
우회어형은 영어로 periphrastic form이라 한다. 우회활용은 영어로는 periphrastic conjugation이고, 영어의 어원인 라틴어로는 Coniugātiō periphrastica(꼬뉴가-띠오- 뻬리프라스띠까)라고 한다.
이 용어는 영미인들에게도 낯선 모양이다. '휠록라틴어'에서 이를 설명하면서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그 내용은 간단하다'면서 설명을 이어가고 있다. 등잔밑은 안 보이나 보다. 자신들의 언어는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제외하면 모든 시제 표현이 다 ‘우회표현’이다.
3) 문법에서 사용하는 우회활용(용장활용)의 구체적인 의미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우회표현(용장표현)의 의미는, 2개 이상의 단어를 사용하여 새로운 뜻을 표현하거나 기존의 있던 표현을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영어시제에서 현재시재(ask 묻다)와 과거시제(asked, 물었다)는 고유한 어형이 있지만, 나머지 시제 표현은 고유한 단일어형이 없어서 몇 개의 어형을 조합하여 표현한다.
미래를 표현할 때는 will ask(물어볼 것이다)라고 한다. will은 현재시제이고, ask는 동사원형인데, 이 두 단어를 결합하여 미래시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회활용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과거완료를 표현할 때는 had asked(물어보았다)라고 하는데, had는 과거이고 asked는 과거분사인데, 이 두 단어를 결합하여 과거완료라는 우회활용 시제를 만들고 있다.
영문법에서는 우회활용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듯한데, 이는 영어의 시제표현은 대부분 우회활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영어사전에서도 우회활용(periphrastic conjugation)을 ‘단순한 동사에 한 두가지 보조어를 결합하여 형성한 동사구의 활용(conjugation)’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conjugation은 동사의 활용을 말한다.
사전의 원문은 이렇다.
“periphrastic conjugation : A conjugation formed by the use of the simple verb with one or more auxiliaries.(Wiktionary)”
이제 라틴어 동사의 예를 살펴보자.
amat(아마뜨, 현재 능동)는 '그는 사랑한다'이고, amābit(아마-비뜨, 미래능동)는 '그는 사랑할 것이다'가 되며, amāvit(아마-위뜨, 완료능동)는 '그는 사랑하였다'가 된다. 같은 어간(amā)에 시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t, -bit, -vit 등이다.
그런데 완료시제 수동태는 이런 독자적인 어미가 없다. 완료수동태를 표현하려면 우회표현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는 사랑받았다'는 amātus est(아마-뚜스 에스뜨)라고 표현한다. 영어에서는 일상인 것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는 특수한 것이 된 것이다. amātus는 '사랑받은'이라는 완료분사이고, est는 '이다'라는 뜻을 가진 현재시제 동사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합하여 완료시제 수동태를 표현하고 있다.
라틴어에서 완료시제 수동태와 과거완료 수동태는 우회표현 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리스어는 미래완료시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제표현이 독자적인 어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어도 일부 시제와 서법에서, 복잡한 형태의 고유어형보다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단어 2개를 결합하여 표현하는 우회어형을 점차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4) 용장활용보다는 우회활용이 더 적절하다
용장(宂長)은 한자어로 '장황함'이라는 의미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용장하다(宂長하다)'는 동사의 뜻은 나오지만 이는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글이나 말 따위가 쓸데없이 길다(표준국어대사전)는 뜻이라고 한다. 어느 경우에나 부정적인 뜻이다.
다음은 실용일본어표현사전(實用日本語表現辭典)에서 설명하고 있는 용장의 의미이다.
용장(冗長, 중복, 장황)이란, 중복(重複)하거나 불필요하게 길게 해서 낭비가 많은 것(또는 쓸모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용(冗)'이라는 글자는, 낭비나 불필요, 쓸데없음 등을 의미한다. 문장이나 대화에 대해 '용장 표현'이라고 하면, 쓸데없이 길게 말해서 뜻을 전달하기 어려운 것을 가리키는 나쁜 의미의 말이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에 '용만(冗漫)'이 있다. '장황함이 끝이 없다는 용장(冗長, 용장, 지루함)이라는 말에 '산만(散漫)'이라는 말을 더한 것이다. 용장(冗長)은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면 그래도 괜찮아지지만, 용만(冗漫)은 아무리 다듬어도 그 요지를 알기 어려운 것을 의미한다. 반대어는 말끔하거나, 간단하고 요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의미의 '간결(簡潔)'이다.
그런데 라틴어의 우회표현은 간결하고 분명한 표현을 위한 것이다.
5) 라틴어 우회활용의 예 - 좁은 의미의 우회표현
아래는 미래분사수동태를 이용한 우회활용의 예이다.
Omnibus colendae sunt virtūtēs.
모두가 덕을 닦아야 한다(직역 : 덕들은 모두에 의하여 닦여져야 한다)
* 예문에 나온 어휘
colendus, colenda, colendum : 닦여야 할(미래분사 수동태)
virtūtēs 덕들은(여성 주격 복수)
colantur 닦여야 한다, 등등(접속법 현재 3인칭 복수, 의무용법)
colendae sunt는 '미래분사 수동태 + ~이다'의 구조로 미래의 당위나 의무 등을 나타낸다.
원래 당위 의무 등은 접속법에 해당하는 표현법이다. 그런데 가상적 사실을 표현하는 접속법은 의무 당위 뿐만 아니라 추측 권유 명령 의지 가정 등의 다양한 용법이 있기 때문에 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분명하게 그 뜻을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라틴어에도 당위나 의무 또는 이와 유사한 뜻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과 대비하여 ‘우회표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dēbeō (~해야한다, ~덕분이다)
necesse est(~해야한다, ~할 필요가 있다. necesse는 형용사)
opus est (필요가 있다, opus는 명사)
oportet(~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한다, ~하는 것이 옳다. 비인칭 동사)
cōgō(~하게 하다, ~하기를 강요하다)
decet(~하는 것이 적절하다, 3인칭 동사)
par est(적절하다. par는 형용사)
(예문)
poenam sequī oportēbat. : 처벌이 뒤따랐다. 처벌이 뒤따라야 했다. (갈리아 전기 4장)
* (직역) 처벌이 뒤따르는 것이 필요했다.
Hominī necesse est morī.
사람이 죽은 것은 당연하다(사람에게 있어 죽는 것은 당연하다).
Hoc fierī opus est.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필요하다.)
* fierī : ⓐ fīō(되다, 발생하다)의 현재부정사 능동, ⓑ faciō(하다)의 현재부정사 수동
라틴어에서 좁은 의미의 우회활용은 능동 우회활용(active periphrastic conjugation)과 수동 우회활용(Gerundive, 당위분사, 동형용사)이 있다.
능동 우회활용은 미래분사 능동태와 sum 동사가 결합한 것이고, 수동 우회활용은 미래분사 수동태와 sum동사가 결합한 것이다.(알렌 그리너, 섹션 193-196).
엘런-그리너의 라틴어 문법에서 우회활용(periphrastic conjugation)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라틴어에서 우회활용(periphrastic conjugation)은 분사와 sum동사로 이루어진 모든 동사구(verb-phrase)를 말한다. 따라서 미래 수동태 부정사인 amātus īrī도 우회활용에 속한다. 그런데 좁은 의미에서는 미래분사 능동태나 미래분사 수동태와 sum 동사로 이루어진 동사구의 활용을 우회활용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어 문법서에서는 우회활용을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성염 교수도 완료시제 수동태는 '우회적인 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급라틴어 199쪽). 굳이 용장활용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용장하게' 설명한 것은 아쉽다.
참고로 앨런-그리너의 라틴어 문법서(Latin Grammar - Allen and Greenough)는 길더슬리브의 라틴어 문법서와 함께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대표적인 라틴어 문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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