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의 이름 이야기
1) 1개짜리 이름과 2개짜리 성명(duo nomina)
조선시대 전국에 걸쳐 얼마나 많은 마당쇠와 돌쇠와 유월이가 있었을까? 모든 마을마다 최소한 몇 명의 마당쇠가 있었을 것이다. 동명이인이 그렇게 많은데도 사회에 큰 혼란이 초래되지 않은 것은 그들의 활동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최참판댁 마당쇠, 김진사댁 마당쇠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자유인이었으면 어땠을까? 자유인이었던 로마 시민들은 다른 과정을 밟았다.
로마의 황금기 시대 로마식 이름의 전형적인 형태는
개인이름 + 씨족이름 + 가족이름(성씨)
praenōmen + nōmen + cōgnōmen
퍼스트 네임 + 미들 네임 + 라스트 네임
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1개의 이름만 사용하였다.
그런데 1개의 이름만 사용하다보면 같은 이름이 많이 생겨 서로 구별하기 힘들어진다. 로마인들은 서로를 구별하기 위하여 이름에 여러 특징을 추가하여 점점 더 긴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개짜리 이름은 인구가 늘어날 수록 같은 이름이 많아져 점차 구별하기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그들은 씨족이름으로 미들네임을 만들어서 2부분으로 된 성명(binomial name)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이름(퍼스트 네임)과 씨족이름(미들네임)으로 구성된 성명을 사용하면서 개인 이름의 종류는 다시 줄어들고 다듬어진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남성형 명사를 사용하였고 여성은 여성형 명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제한된 이름과 자유인의 급격한 팽창은 더 복잡한 이름의 등장을 초래한다.
2) 3부분으로 된 성명(tria nomina)
로마공화국 초기가 되면 라스트 네임으로 성씨를 추가하여 3부분으로 된 성명(Tria nomina)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3개의 이름에 더 추가하기도 하였다. 이는 나중에 서양식 이름 형식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라스트 네임(성씨)의 추가는 로마인들의 이름을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였다. 로마인들은 매우 현실적인 내용으로 성을 지었다고 한다. 직업 별명 거주지 신체적 특징 등이 모두 사용되었다. 키케로 Cicero는 병아리콩(chickpeas)을 재배하는 집안, 파비우스 Fabius는 콩(beans)을 재배하는 집안, 렌툴루스 Lentulus는 렌즈콩(lentils, 편두)을 재배하는집안, 피소 Piso는 완두콩(peas)을 재배하는 집안 등등이다.
키케로가 정계에 입문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그 이상한 성을 바꾸는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는데, 그는 '스카우루스(Scaurus,부은 발목)나 카툴루스 (Catulus, 강아지)와 같은 성도 있다'면서 자신은 본인의 성을 더 영광스럽게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3부분으로 된 성명을 쓰기 시작한 로마공화국 초기에는 약 30-40개의 퍼스트 네임이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 20여개 정도만 널리 사용되었다. 기원전 1세기가 되면 그 수가 줄어들어서 10여개(a dozen)가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퍼스트 네임의 수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 것은 개인보다는 가족을 중시하는 당시 사회체제와 연관이 있어 보이지만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로마의 가부장제는 국가 안의 국가라고 할 만큼 매우 엄격하여, 당시의 가장은 노예를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권한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생사여탈권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퍼스트 네임이 철수와 영희(죄송^^)보다 더 흔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마르쿠스'가 거의 한 두집 건너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키케로씨네 마르쿠스, 카툴루스네 마르쿠스 등등. 10여개의 이름(퍼스트 네임)을 로마 제국의 거의 모든 남성들이 사용했다고 하니 퍼스트 네임은 집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공공의 장소에서는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쓸 때 퍼스트 네임은 약자를 사용한다. 약자로 써도 퍼스트 네임은 몇 개 안되니까 모두가 알아본다.
카이사르는 C. Iulius Caesar(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쓰고,
키케로는 M. Tullius Cicero(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라고 쓰게 된 것이다.
같은 가족 두 사람을 가리킬 때는 Pūblius et Servius Sullae(뿌-블리우스 에ㄸ 세르위우스 술-라이)와 같이 가족이름(성씨)의 복수형을 사용하였다(단수 : Sulla),
4번째, 또는 5번쩨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명예나 업적을 나타내거나, 또는 다른 씨족이나 가족에서 입양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소 스키피오(Scipio the Younger)의 정식이름은 Pūblius Cornēlius Scīpiō Āfricānus Aemiliānus이다. 4번쩨 이름 Āfricānus는 그가 아프리카를 개척했음을 나타낸 것이고, 5번째 이름 Aemiliānus는 그가 아이밀리아 씨족(Aemilian gēns)에서 입양되었음을 나타낸다.
고전시대에는 이 4-5번째 이름에 대한 명칭이 없었지만, 후세 문법학자들은 이를 āgnōmen(앙-노-멘, 추가이름, 별명)이라고 불렀다.
덤으로 알게 된 것은 W. 서머셋 모옴(W. Somerset Maugham)이 로마식 이름 표기라는 것이었다. 최근들어 잘 쓰지 않는 방식이지만 이런 이름이 종종 보인다.
W. Somerset Maugham
J. Stuart Blackie
널리 알려진 로마인들이 퍼스트 네임의 약어는 다음과 같다. 글 맨 끝에 흔히 쓰였던 좀 더 많은 퍼스트 네임도 부기한다.
Aulus (A.)
Appius (Ap.)
Gāius (C.)
Gnaeus (Cn.)
Decimus (D.)
Kaesō (K.)
Lūcius (L.)
Māmercus(Mām.)
Mārcus (M.)
Mānius (M’.)
Pūblius (P.)
Quīntus (Q.)
Sergius (Ser.)
Sextus (Sex.)
Spurius (Sp.)
Titus (T.)
Tiberius (Ti.)
* Gaius의 약자는 C.를 사용한다. 라틴어 알파벳 C는 그리스어 알파벳 감마 (Γ) 에서 왔다.
너무도 흔해 구별성이 없게 된 퍼스트 네임은 공화정 말기부터 서기 2세기 사이에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다가 결국 공적으로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황제는 퍼스트네임+미들네임 조합이 굳어져 남녀 형제들의 후손들이 똑같은 퍼스트네임+미들네임 조합을 가지는 일도 생겼다. 이 경우에는 성씨(라스트 네임)나 퍼스트 네임을 통해 서로를 구별하였다(미들 네임은 씨족명이므로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 황제와 두 아들 황제의 이름 |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이름 : Titus Flavius Vespasianus 티투스 황제의 이름 : Titus Flavius Vespasianus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이름 : Titus Flavius Domitianus |
이런 곡절 끝에 결국 로마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성명을 말할 때, 미들네임 + 라스트네임(성씨) 조합을 사용하였다. 퍼스트 네임이야말로 새로 태어난 개인에게 새롭게 부과된 유일한 이름인데, 로마시대의 성명의 역사를 보면 퍼스트네임의 잔혹사인 듯 하다.
3) 로마 여성들의 이름
로마 여성들은 보통 엄마와 딸이 같은 이름(퍼스트 네임)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가족 내에서는 이름으로 서로를 구별할 수 없어 그 중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여성형의 미들 네임(아버지의 씨족이름)이 사용되었다. 로마의 여성은 결혼 후에도 성명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미들 네임은 딸과 달라서 서로 구별이 되었다. 미들 네임은 부계 씨족 이름이므로 외할머니 어머니 딸 외손녀의 이름(퍼스트 네임)이 서로 같더라도 미들 네임은 계속 바뀐다.
실제로 통용되는 로마 여성들의 이름은 두개의 부분(아버지의 미들네임과 라스트네임의 여성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아버지의 이름이 '마르쿠스 율리우스 카툴루스'이면,
딸의 이름은 '율리아 카툴라'가 된다.
그런데 딸이 2명 이상이면 어떻게 할까? 보통 자매가 2명이면 이름에 순서를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혔다. 2명이면 큰애(Maio) 작은애(Mino)로 불렀고, 간혹 3명이면 제일큰애(Maxima), 큰애(Maio), 작은애(Mino)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3명 이상이면(아마도 큰애 작은애 다음에) 세째(테르티아, Tertia) 네째(콰르타, Quarta) 등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둘째를 뜻하는세쿤다(Secunda)는 드물게 쓰였고, 첫째를 가리키는 프리마(Prima)는 잘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율리우스의 딸이 4명이면, 각각 율리아 마이오, 율리아 미노, 율리아 테르티아, 율리아 콰르타라고 부르고, 통용되는 이름은 율리아마이오 카툴라, 율리아미노 카툴라, 율리아테르티아 카툴라, 율리아콰르타 카툴라 등이 된다.
그런데 아버지 '마르코스 율리우스 카툴루스'에게 3명의 아들이 있고 그들이 각각 딸 1명씩 두었다면, 손녀들의 이름은 모두 같아진다.
<아들 이름>
아울루스 율리우스 카툴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툴루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카툴루스
딸들의 이름은 모두 '율리아 카툴라'가 된다. 여성의 이름에는 '아버지가 어느 씨족에 속하는 누구'인지만 나온다. 여성들은 밖에 나가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 유명한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 툴리아(Tullia)가 있었다. 아무리 검색해도 그 딸의 풀네임은 나오지 않는다. 그의 아내 이름도 테렌티아(Terentia)라고만 나온다. 고전시대에는 2단어 이름마저 여성에게는 잘 쓰이지 않았다.
만약 키케로에게 둘쨋딸과 셋째딸이 있었다면, 둘째는 툴리아 세쿤다(Tullia secunda, 또는 Tullia minor 툴리아 미노르)라고 했을 것이고, 셋째는 툴리아 테르티아(Tullia tertia)라고 했을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여성들의 이름(퍼스트 네임)을 약자로 쓸 때는 글자를 뒤집어서 썼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울라(Aula)는 ∀., 가이아(Gaia)는 Ↄ., 마르키아(Marcia)는 Ш. , 티티아(Titia)는 ⊥. 등등이다.
◈ 가장 많이 쓰였던 여성의 개인이름(praenomen) (출처 : wiki ‘Praenomen’)
Appia (Ap.)
Aula (A.)
Caesula
Decima (D.)
Fausta (F.)
Gaia (C.)
Gnaea (Cn.)
Hosta (H.)
Lucia (L.)
Maio (Mai.)
Mamerca (Mam.)
Mania (M'.)
Marcia (M.)
Maxima
Mettia
Mino (Min.)
Nona
Numeria (N.)
Octavia (Oct.)
Paulla
Postuma (Post.)
Prima
Procula (Pro.)
Publia (P.)
Quarta
Quinta (Q.)
Secunda (Seq.)
Septima
Servia (Ser.)
Sexta (Sex.)
Spuria (Sp.)
Statia (St.)
Tertia
Titia (T.)
Tiberia (Ti.)
Tulla
Vibia (V.)
Volusa (Vol.)
Vopisca (Vop.)
* 다른 설명에서 프리마나 세쿤다는 잘 쓰이지 않는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이 중에서도 일부만 흔하게 쓰인 것으로 보인다. 약자가 있는 것이 더 흔하게 쓰였을 것이고, 알파벳을 선점하는 이름이 더 먼저 보편화 되었을 것이다.
◈ 가장 많이 쓰였던 남성의 개인이름(praenomen) (출처 : wiki ‘Praenomen’)
Agrippa (Agr.)
Appius (Ap.)
Aulus (A.)
Caeso (K.)
Decimus (D.)
Faustus (F.)
Gaius (C.)
Gnaeus (Cn.)
Hostus
Lucius (L.)
Mamercus (Mam.)
Manius (ꟿ. or M'.)
Marcus (M.)
Mettius
Nonus
Numerius (N.)
Octavius (Oct.)
Opiter (Opet.)
Paullus
Postumus (Post.)
Proculus (Pro.)
Publius (P.)
Quintus (Q.)
Septimus
Sertor (Sert.)
Servius (Ser.)
Sextus (Sex.)
Spurius (S.)
Statius (St.)
Tiberius (Ti.)
Titus (T.)
Tullus
Vibius (V.)
Volesus (Vol.)
Vopiscus (V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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